누군가 담장에 끄적거린 낙서, 대문앞 길바닥에 덕석깔고 말리는 고추, 돌담아래 채송화...
자동차들 내달리는 큰 길들 사이에서 수직으로만 치솟은 아파트들 사이에서
구불구불 휘어진 조그만 골목길을 만났다.
몇 년새 맹렬한 기세로 아파트가 들어선 이곳에
잘못맞춰진 퍼즐 한조각처럼
이 마을은
'간신히' 남아 있다.
-여그가 이렇게 딴세상돼불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제.
-우리 마을만 옴팡 들앉아갖고 요상스럽게 민속촌같이 돼부렀어.
-큰 길도 나고 좋은 것도 있을테제만 산도 비고 들도 가찹고 허던 것보단 못허제. 인자는 눈앞에 비는 것이 아파트밖에 없네.
-딴 디 안가고 우리는 팽야 여그서 살아야제. 30년을 넘게 살아온 곳인디.
시간의 퇴적층같은 돌담들이 길게 이어지고
개짖는 소리는 볕 짱짱한 가을 한낮의 고적함을 더하고
열린 대문 사이로 보이는 마당엔 깻단들이 서로 등을 기대 서있고
높은 아파트들 아래 나지막한 지붕들 사이로 흰빨래를 널고 있는 할머니가 보이는 그 골목길.
도시의 삶으로, 아파트라는 네모난 집으로
우리가 서둘러 편입되는 동안 저만치 여의고 온 것들이
여기엔 있다.
저어기 보이는 매끈한 얼굴의 아파트들은 저마다 '신암마을'이라고 써붙이고 서있지만,
진짜 신암마을은 아무것도 써붙이지 않고 오래오래 여기 있어온 이 살림집들속에 있고, 날마다 골목에 발소리 숨소리 보태며 살아온 이곳 사람들 속에 있는 것 같다.
남신희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