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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들에 형님의 사랑이
지금 아름다운 책으로 되돌아오니 얼마나 기쁘실까요...
'재수생 내 동생'이
이제는 나의 든든한 후원자(책의 출판인)가 되어
모든이들에게 사랑을 나누어주시니 말이예요.
행복해요 두칠님!
수월 담연화
김현주.
> 두칠이 님이 쓰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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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수생 내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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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학 근 (두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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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집에서 나는 4형제의 맏이다. 그러니 남자 동생이 내 밑으로 셋이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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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중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 해 진학을 못해 재수를 한 동생이 하나 있다. 나와는 다섯 살 차 이라 군대를 갔다오니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동생의 꿈은 하늘의 사나이 빨간 마후라 공군 조종사가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공군사관학교에 응시를 했고 필기시험 신체검사 면접 까지 다 보았는데 결과는 낙방이었다. 내 권유로 대학 입학시험에 응시하라니 마지못해 응 시를 했는데 그 또한 낙방이었다. 그래서 하는 수없이 재수를 했던 것이다. 내가 막 군대를 마치고 온 뒤라 동생이 군인이 된다는 것은 두 손들고 말릴 일이었다. 나는 동생이 재수하여 보기좋은 일류대학에 당당하게 입학하여 대학생이 되길 바랬다. 복학하여 봄 학기를 보 내고 여름방학이라 고향집에서 지내게 되었는데 술 잘 먹고 운동 좋아하고 노래 잘 부르는 내 동생은 하루가 멀다않고 친구가 불러내어 나가니 재수생이라고 공부하는 꼴을 볼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입시를 포기한 것도 아니고 의지가 약해 자기관리가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친구가 좋아 거절하지 못하고 어울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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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는 수없이 동생의 재수를 큰 도시 학원으로 보내자고 부모님께 상의를 했더니 내 등록금과 하숙비도 겨우 맞추어 보내는데 재수생 유학 보낼 돈이 없다는 것이었다. 집안 형편을 아는 테이지만 그렇다고 여기에 두어 또 다시 재 재수를 하게 할 수는 없었다. 이학기가 시작되자 나는 동생을 내가 다니는 학교가 있는 도시로 데리고 와 한방에서 하숙을 하게 되었다. 물론 내 하숙비는 동생 몫이 되었고 나는 중학생 몇을 가르치는 과외수업 선생이 되어 하숙비를 벌었다. 동생이 하숙집에 들어오는 날 이불 보따리 하나에 책가방 하나를 들고 왔다. 형과 한집에서 먹고 한방에서 잠을 자야하는 그 녀석의 고충은 나의 眼前에는 전혀 없고 나는 어느새 엄한 형이 되어 그는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살았다. 그 털털한 성격에 장난기 많은 나이에 기를 죽여 살려니 그로써도 여간 고통이 아니었으리라. 내가 하숙집에 없는 동안이면 같이 하숙하는 내 친구들이랑 팔씨름 닭싸움 손가락 꺾기며 이런바 奇想天外한 장난을 다 부려 좌중을 웃기고 한바탕 소란을 떨다가도 내가 나타나면 그 얼굴이 지킬 박사와 하이디가 되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학원 간다며 사라지곤 했으니 동생의 재능은 내가 그 때는 잘 몰랐던 모양이었다. 허기야 그 녀석의 청소년 시기에는 내가 군복무며 대학을 다녔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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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과외수업 선생 노릇을 하는 이유도 좋아서 하는 것도 아니고 내 학비가 없어서 하는 것도 아니고 공부하랴 미팅하랴 친구 사귀랴 나도 할 일이 많으나 순전히 동생 하숙비 때문에 내가 청해 하는 것이었으니 도리가 없었다. 다만 그녀석이 내가 보냈으면 하는 대학에 들어가 주었으면 하는 기대로 한 학기 봉사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 동생도 형의 그런 마음을 알았던지 밤늦게 학원에서 들어와 혼자서 늦도록 공부를 하는 것 같았다. 그후 두어 달이 지났을까, 그 동안 이십여 년이 흘렀으니 정확한 기억은 없으나 하숙집 아침밥상에서 영어 책을 뒤적이며 하는 말이 오늘 시험 보는 날이라고 했다. 그도 이 말을 나에게 끄집어내는 것이 못내 마땅하지 않았으나 아니 할 수가 없어 하는 말이였던 것이다. 무슨 시험이 벌써 있느냐고 묻자 사관학교 시험은 그때도 특차라 전기대학보다 몇 달 앞서서 쳤었다. 별로 신통한 내 대답도 못 듣고 시험장에 갔던 모양이다. 저녁 식사시간이면 언제나 하숙생 전체가 밥상에 둘러앉아 하숙집 아주머니가 퍼주는 밥을 하숙생끼리 먹는다. 그 날 저녁 동생 말이 의하면 영어 문제가 오늘 아침에 밥상머리에서 읽었던 지문이 그대로 나왔어 자기는 다 맞았다고 허풍을 떨었다.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 대꾸도 않고 나가 버렸다. 그리고 또 한 두어 달이나 또 지나갔다. 그 날 동생이 나에게 오늘 최종발표가 있으니 집에 돌아올 때 병무청에 들러 결과를 보고 오겠다고 했다. 언제 신체검사와 면접을 했냐고 물었더니 벌써 신체검사 면접시험 나 몰래 다 보았다는 것이다. 학교에 갔다 과외수업 가기 전에 언제나 하숙생들이 저녁밥상에 둘러앉았다. 빈 상에 앉아 밥이 들어오기를 기다리며 동생은 언제나 했듯이 제 형 친구들에게 장난을 걸고 농담을 하고 웃음판을 만들다 내가 나타나니 모두들 조용해졌다. 내 친구들도 말이 친구지 같은 학교에 한 학년 친구라 그들도 나도 좀은 서먹서먹한 사이라 오히려 나와는 친구지만 동생이 더욱 가깝고 재미있게 지내는 터였다. 내가 방에 들어가자 오늘따라 동생의 목소리가 더욱 크고 밝게 울려나왔다. 나는 미상불 동생이 오늘 최종 합격자 발표도 있다고 했는데 녀석의 행동에 신경이 쓰여 아무 소리도 않고 상머리에 앉았다. 나는 과외수업 하러 떠나야하기에 밥만 어서 먹고 일어설 참이었다. 모두들 정신없이 밥을 먹었다. 그 나이에 우리들은 밥을 많이도 먹었다. 그래서 밥 많이 주고 반찬 잘해 주는 하숙집을 골라다녔다. 동생이 식사 중에 한마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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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님들 그 동안 여러 가지로 고마웠습니다. 오늘 제가 공군사관학교 최종 합격자 명단에 들어 오늘로 이곳 하숙집을 떠날까 합니다."
> 내 의견도 알아보지 않고 일방적인 제 의견 통고를 나에게 그런 방식으로 해왔던 것이다. 아무 대꾸도 없이 밥을 다 먹고 내 방으로 돌아와서 과외수업을 갈려고 하니 녀석은 벌써 이불 보따리를 다 꾸려 놓고 나에게 저녁에 낙향하려고 하니 그리 아십시오라고 작별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아니 이 녀석 보아라. 내 말이라면 죽는 시늉이라도 하는 놈이 이제는 나도 생각을 좀 해보아야겠구나. 그래서 이렇게 타일렀다. 그래 네가 공군이고 조종사고 다 좋으니 일단은 대학 본고사를 보고 난 뒤 사관학교를 가던지 일반 대학을 가던지 나중에 정하면 되지 않느냐고 설득을 했다. 그런데 설득이 되질 않으니 난감하기 그지 없었다. 내가 생각한대로 내가 주장할 수 있는 내 마음대로 움직여 주는 동생이 이젠 아니었던 것이었다. 아무리 설명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형도 그 과외수업 이젠 할 필요가 없고 자기도 이젠 학원 수업료 낼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학원비도 하숙비도 이젠 필요가 없어졌는데 그리고 가지도 않을 일반대학에 무엇 때문에 여러 사람 고생시킬 이유가 없다는 설명이었다. 그리고는 당장 이 밤에 내려간다는 것이다. 고향 어머니께도 이미 전화 걸어 두었다고 했다. 이 밤에 갈 터이니 기다리고 계시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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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 어쩌겠느냐? 평양 감사도 자기하기 싫으면 그만 이라던데......
> 하다 하다 이 형이 결국 승낙을 할 수밖엔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구차하게 내 놓은 제안이 이 밤 새고 내일 아침에 가라하니 그럴 이유가 있냐고 되물었다.
> "너도 여기 객지에 와서 저 형들과 한솥밥 먹고 지냈는데 그냥 보내 수가 없다. 내가 마지막으로 너에게 해 주고 싶은 일이 있다. 우리 하숙집에 경사라면 경사 아닌가 그리고 너 송별파티라도 열어서 보내야지 이 형이 덜 섭섭하겠구나."
> 그날 저녁 하숙생 내 친구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내 동생, 재수생 내동생이 공군사관학교 합격하여 이 밤 자고 떠날 것이니 송별 파티를 내가 열어주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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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들 대 찬성이었다. 그날 난 과외수업도 빼먹고 주머니를 털었다. 그러나 가난한 복학생 주머니에는 소주 몇 병 살 돈이 없었다. 그래서 내 아버지께서 내가 객지 생활하다 돈 필요 하면 팔아 쓰라고 주신 당신이 끼시던 황금반지를 전당포에 맡기니 기 만원이 되었지 싶었다. 난 그 돈으로 술과 안주를 사서 우리 하숙집 동료들이랑 즐겁고 기쁜 축하의 술을 나누어 마셨다. 하숙집 아주머니는 부지런히 안주를 장만해 올렸다. 열두 시나 되어 술에 취해 잠이 들고, 나도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동생을 찾으니 책 보따리 하나와 이불 보따리 하나와 동생이 없었다. 쪽지 편지 한 장 남기고 흔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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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님, 이 밤이 새기 전에 내려갑니다. 형님 기대에 못 해드려 죄송합니다. 제 인생 길은 저 하늘에 있으니 부디 붙들지 마시고 놓아주십시오. 일차 이차 합격하여 사관생도 될 줄 알았는데 최종합격에 누락되어 친구들은 사관생도 되었는데 저만 못 간 이 심정을 이해하신다면 절 보내십시오. 작년에 대학 시험치는 날 시험장에 안가고 부산 바닷가에서 바다를 보며 결심하고 절치부심(切齒腐心) 이 날을 위해 미친놈처럼 살아왔습니다. 그 동안 형님 은혜 어찌 잊겠습니까? 이 날이 오면 하루도 더, 한 밤도 더 자지 않고 떠날 것을 명세로 살아왔습니다. 부디 이해하여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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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내 동생이, 잘 생기고, 잘 놀고, 노래 잘하고, 운동 잘하고, 의리 있고, 성격 좋고, 술 잘 먹고, 인정 많은, 재수생 내동생이 지금은 공군의 간성으로 주먹만한 말똥을 두 개나 달고 우리 형님 직장에서 빌빌하며 눈치보고 살까봐 사방팔방 연락하여 공군 말똥들이 줄지어 찾아와 주곤 한다. 내 직장이 공군들 탈 비행기 만드는 회사이다 보니 그 공군들이 사관 출신 조종사 공군들이 모두들 선후배라고 다 알고 찾아와 준다. 형보다 나은 아우 없다고 입에 달고 다니건만 이 형보다 나은 아우가 되었으니 그 시절 재수시키면서 군인 안 만들려고 했던 내 쓴 추억이 격세지감으로 다가와 씁쓸한 감회에 젖고 하숙생 그 시절이 그리워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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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9.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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